차가운 발을
츠키카네 : 츠키야마 슈, 카네키 켄
w. cocomero
"카네키 군……."
츠키야마는 카네키의 발목을 조심스럽게 잡고 발등에 입 맞췄다. 축 늘어져있는 카네키의 발은 발끝까지 새하얗게 질려있었는데 츠키야마는 그런 그의 발이 빛나는 상아조각 같다고 생각하면서 쓸고 쓰다듬었다. 가만히 엎드려 있던 카네키는 신성한 무언가를 받드는 것과도 같은 츠키야마의 행동이 우스꽝스럽게 느껴져 소리 없이 입 꼬리만 비틀어 웃었다.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츠키야마는 그런 카네키를 눈치 채지 못한 것도 아니었건만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신기할 정도로, 츠키야마 씨는..."
"응?"
"갈수록 기분 나빠지네요."
"서운한걸."
"거짓말."
기분 나쁘다고 말하면서도 그의 손길을 물리치지 않는 카네키의 너그러움에 츠키야마는 투정부리는 듯 말했다. 곧바로 따라오는 카네키의 장난스럽지만 단호한 말에 부정할 수 없었다. 카네키가 자신을 기분 나쁘다고 생각하면 서운하겠지만, 카네키는 기분 나쁘다고'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서운하지 않았다. 오히려 누구에게나 다정한 카네키가 저에게만 쌀쌀맞게 구는 모양은 자못 기분 좋은 것이었다.-물론 그것과 별개로 누구에게나 다정한 점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카네키는 축 늘어져있던 발에 힘을 줘 츠키야마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츠키야마는 무리하게 그것을 붙잡지 않고 순순히 놓아주었다. 까딱, 까딱. 앞뒤로 흔들리는 카네키의 발을 비스듬히 내려다 볼 뿐이었다. 츠키야마가 팔까지 괴고 본격적으로 카네키의 발에 집중하자, 멍하니 한 쪽 벽의 커다란 창에 시선을 던지고 있던 카네키가 몇 번을 망설이며 말을 할 듯, 말았다. 찰나의 망설임도 놓치지 않은 츠키야마는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는 걸까, 카네키 군."이라고 부담스럽지 않게 재촉했다. 카네키는 츠키야마의 말에 못 이긴다는 듯 한숨을 쉬곤 몇 번을 더 입술을 달싹이고서야 입을 열었다.
"발이 차가워요."
"그랬던가?"
츠키야마는 턱을 괸 채, 고개를 슬쩍 옆으로 숙이며 물었다. 조금 전까지 손 안에 있던 카네키의 발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미지근한, 그냥 그런 온도였다. 츠키야마는 턱을 괴지 않은 한 쪽 손을 천천히 쥐었다 피며 카네키의 발의 온도를 기억해내려 했지만, 역시 카네키가 말했던 것처럼 차갑진 않았다. 뭔가 다른 의미가 있는 걸까. 츠키야마는 몸을 일으켜 움직여, 카네키의 발에 집중하고 있던 눈을 돌려 카네키의 눈으로 집중했다. 언제부터였는지 카네키는 이미 츠키야마를 곧은 시선으로 올려다보고 있었다. 츠키야마는 갑자기 마주하게 된, 새하얀 시트에 누워 자신을 올려다보는 반듯한 카네키의 시선에 혀로 입술을 축였다. 카네키 군, 이건 무슨 유혹이지? 츠키야마는 평정을 가장하며 카네키를 천천히 살펴보았다. 빛나는 것처럼 흐트러진 하얀 머리카락도 조금 파리하게 질린 낯빛도 주저하는 입술도, 무엇보다 밤바다가 가라앉은 것 같은 새카만 눈도.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었다.
"츠키야마 씨의 손은 뜨거워요."
"응."
"전… 차가운 발이 싫어요."
말을 마치고 카네키는 엎드려있던 몸을 조용히 일으켜 침대 위에 무릎을 조금 세우고 앉았다. 카네키는 할 말이 끝났다는 듯 입을 다물었다. 츠키야마 역시 아무 말 없이 카네키를 응시하다, 카네키의 옆에 앉았다. 츠키야마가 앉자, 카네키는 세운 무릎을 조금 끌어안으며 고개를 수그렸다. 츠키야마는 무겁게 떨어질 듯 숙여진 카네키의 머리카락을 몇 번 쓰다듬곤 훤히 드러난 여윈 뒷목을 한 손으로 잡고 그가 고개를 들게끔 만들었다. 카네키는 힘없이 고개를 들었지만 좀처럼 눈을 맞춰주지 않았다.
"카네키 군."
"...네."
꿋꿋이 시선을 피하고 있으면서도 대답만큼은 착실히 하는 것이 카네키다웠다. 츠키야마는 카네키의 뒷목에 닿아있는 제 손바닥이 과연 카네키의 온도보다 뜨겁다고 생각하며 그 손을 천천히 늘어뜨려 카네키의 등허리를 쓸어내리며 곧 카네키의 발에 닿았다. 조금 전과 다를 바 없이 발끝까지 하얗게 질려있는 상아같이 고운, 미적지근한 온도의 발이었다. 츠키야마는 카네키의 발 위에 얌전히 손을 얹고 엄지손가락 끝으로 몇 번 쓰다듬었다. 카네키는 츠키야마의 손이 물 흐르듯 유려하게 움직이는 것을 느끼며 저도 모르게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긴장했다. 결국 그 손이 발에 닿고, 그제야 긴장이 풀려 츠키야마의 어깨에 이마를 대며 기댔다. 츠키야마는 기다렸다는 듯이 카네키의 머리에 쪽, 쪽 소리를 내가며 입 맞췄다. 이건 정말….
"어리광을 부리고 싶다면, 얼마든지."
"기분 나빠요."
"하하. 그 말, 진짜일까."
"아니요. 아니에요. 그건… 거짓말이에요."
천천히 발의 피부 속을 꽉 채우고 있던 차가움이 봄 햇살에 눈 녹듯 반짝이며 흔적 없이 사라지는 감각에 카네키는 츠키야마의 뺨을 붙잡고 먼저 입술을 부딪쳤다. 따뜻한 츠키야마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뭐든 녹여주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며.
* * *
"아리마 씨. 발이 차가워요."
"하이세?"
둥글게 등을 말고 세운 무릎을 끌어안고 소파 구석에 앉아있는 하이세의 곁에 아리마가 앉았지만, 하이세는 여전히 고개를 푹 숙이고 웅얼웅얼 말했다. 추운가? 아리마는 조금 전 올린 히터로 이미 충분히 훈훈해진 방안의 공기를 생각하며 고개를 조금 갸웃했다. "추워요, 아리마 씨." 하이세는 여전히 영문 모를 소리를 중얼거렸다. "하이세…." 아리마가 하이세의 이름을 부르며 어깨에 손을 올리기가 무섭게 하이세가 아리마의 품을 파고들었다.
"발이 차가워서, 견딜 수가 없어요."
…….